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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한국사

[ 한국사 ] 남북국 시대에 대한 의견

by 신인용 2020.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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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통일국가는 신라? 고려?

 고려가 건국되기 전 통일신라에 있었던 견훤, 궁예가 후백제, 후고구려를 선포했다. 이 점은 이미 그들은 백제, 고구려와 대비되는 신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신라에 반기를 들 때 후백제, 후고구려라는 국명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들은 이미 통일신라에 살고 있었고, 신라의 혼란을 수습하고 건국된 고려는 통일된 상태로 유지된 국가를 이어서 건국한 것이기 때문에 최초의 통일국가를 고려라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보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다.

 

고구려의 계승자를 자처했던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의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을까?

 의견1. 발해는 고구려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고, 관습이나 문화적 측면에서 고구려를 계승하면서도 발해의 고유문화를 형성함.

- 발해국왕은 자신을 고구려국왕이라 칭하고, 일본도 고구려국왕이라고 칭함.

 

 의견2.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건국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공헌에 불과.

-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탈환하려고 노력하지 않음.

- 독자적 국가의 모습이 강했음.

-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학자들에 의해서 한국사가 아닌 만주사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의견제기.

 => 일본학자가 주장한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는 발해와 통일신라를 남북국시대로 인식하고 발해사를 우리나라 역사로 인식하려고 노력함.

 

 

통일신라와 발해 vs 남북국 시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나?

 두 나라가 동족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남북국이 맞미나, 동족의식이 없이 각각 존재한다면 두 국가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통일신라와 발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신라와 발해는 전쟁이 있었나?

신라와 발해는 서로 노골적으로 적대는 하지 않았다. 신라가 당의 독려를 받아 공격했던 사실은 알 수 있다. 신라의 김충신이 발해를 공격했던 것은 당나라가 발해를 적대시한 것을 알고 귀에 발린 말을 했던 것을 아닐까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발해 무왕의 동생 대문예가 당나라로 망명간 것에 분노한 무왕은 당나라를 공격하게 된다. 이에 당나라는 대문예를 보내 발해를 공격하였다. 여기서 서로 사이가 안 좋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신라도 발해 아래쪽을 공격하였으나 실제로 타격이 되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실제로 충돌은 없었지만, 그런 움직임은 있었다.

 

물리적 충돌보다는 경쟁했던 측면이 두드러진다.

빈공과에서 발해 유학생에게 따라잡힌 것에 치욕으로 여기고, 최치원이 급제하자 수치를 씻었다고 한다. 사신의 서열을 두고 경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신라와 발해는 교류가 있었나?

 경쟁하는 나라라 하더라도, 교류는 있었다.

발해는 주요 교통로 가운데 하나로 신라도를 두었다. (당나라-조공도, 거란- 거란도, 일본-일본)만약 신라와 발해가 대립관계만을 유지했다면, 굳이 역로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통일신라와 발해인가? 남북국인가?

 1. 통일신라와 발해라고 불러야 한다.

- 각 나라의 고유성을 인정해야 함.

- 일본학자들은 신라와 발해는 교섭이 없었고, 두 나라의 관계는 일본을 중심으로 돌아갔다고 주장.

 2. 남북국이라고 불러야 한다.

- 발해와 신라가 전혀 관련없이 보는 것보다 교류가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함.

- 발해사를 만주사로 보려는 일본학자들의 의견에 반대하고, 발해사를 한국사에 적극적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의미로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선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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