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라의 삼국통일이다.
긍정측
- 불완전하게 분열되어 있던 국가를 하나로 통일하였다.
- 삼한일통(일통삼한) 이라는 민족정신이 있었다.
- 외세를 끌여들여 통일했지만, 통일 이후 외세를 몰아내기 위한 노력을 했다.
부정측
- 영토통합에서 고구려의 영토는 적게 포함되었다. 불완전한 통일이었다.
- 신라가 백제를 통합하기 위한 것이었다. (백제통합전쟁론)
북한학계
- 남한: "통일신라와 발해", 북한: "발해 및 후기신라".
- 북한은 최초의 통일국가를 통일신라가 아닌, 고려라고 본다.
2. 신라의 "삼한일통"이라는 민족정신으로 삼국을 통일하였다.
Q) 먼저 신라는 언제부터 삼한일통이라는 말을 썼는지 알아보자. 통일전? 후?
1. 통일 전에 생겼다는 의견 - 긍정측
- 김유신 자신이 삼한을 하나로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대업을 완수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 태종무열왕의 묘호와 당태종의 모효가 겹쳐 이를 바꿔달라 요청받았을 때, 본인은 삼한을 통일한 업적이 크다며 거절했다.
- 황룡사구층탑을 세움으로써 후세에 삼한이 통일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2. 통일 후에 생겼다는 의견 - 부정측
- 삼국통일 이후에 자신들의 업적을 띄우고, 새로운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통치제제를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의식이다.
- 이 전쟁은 대야성전투에서 김춘추가 아끼던 딸과 사위가 전사하자, 이에 분노한 김춘추의 복수심으로 인한 전쟁이다. 삼한통일의 의식이 있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 신라지배계층이 여러 세력을 포섭하고 백성들을 통합하여,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적 발상일 뿐이다.
- 실제로 삼한통일 자체가 삼국통일 이후에 자주 등장한다.
- 태종무열왕이 종묘에서 영원히 모시는 지주인 불천지주로 지정되었다.
- 황룡사구층탑의 세운 의미에서, 여러 크고 작은 나라들 가운데 서 있는 신라가 혼란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 있고, 불법의 공덕을 쌓은 덕분에 통일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3. 백제통합전쟁론
백제통합전쟁론 : 신라의 목적은 삼국통일이 아니라 백제 공격이었다.
당시 신라는 주변국의 침공이 자주 일어나게 되어 이것에 대항하기 위했던 것이다. 대항하기 위해 당시 떠오르던 당나라와 연합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신라는 백제를 치려는 목적이 있었고, 당나라는 오랜 숙적인 고구려를 멸망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이렇게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연합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라는 백제통합이 목적인데 백제토벌 이후 고구려 정벌 때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것으로 보아 신라는 과연 백제만을 치려했을까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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